국내 철강·완성차·기계 업계, '전기화 넷제로 시대' 채비 나서
전기화, 2050년이면 탄소제로 비중 27%로 신재생 압도 전망

[사진=프리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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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캔=박진용 기자] 전기화가 글로벌 탄조제로화 기류 속 핵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넷제로를 실현할 수단으로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기반이 주목받았던 것과 대조되는 흐름이다. 유럽발 탄소제로화 교역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기를 활용해 탄소배출 격차를 빠르게 좁혀나가야 한다는 국내 산업계의 인식이 확장하면서다. 

이미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탄소 배출이 많은 석유·화학, 철강 분야에서 전기화 채비를 마친 상태다.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탄소저감 인프라가 신재생에너지에 쏠려있는 만큼, 향후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면 전기화 도입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잇따른다. 

다만 국내 산업계의 전기화 속도가 해외 선진국에 비해 더디다는 평가 속에서도, 이미 상당부분 전기화가 진행된 산업군도 있다. 철강 기업들의 경우 '전기로'를 활용힌 수소환원제철 생산체계를 구축하며 넷제로에 빠르게 동참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 완성차 기업들도 이미 전기차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 개발 역량에서 세계적 반열에 오른 상태다.  

특히 제조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철강업계는 일찌감치 중장기 시나리오를 준비해 전기로 생산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해 왔다. 기존 고로 대신 전기로를 늘려 탄소배출을 대폭 저감시킨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로의 경우 전기 에너지로 생성된 열로 쇳물을 만들기 때문에 기존 석탄·가스 연소로 쇳물을 만들었던 방식에 비해 탄소배출을 크게 저감시킬 수 있다.

탄소제로화 대표 사례로 손꼽히는 기업은 포스코다. 이 회사는 기존 고로에서 전기로 전환을 시도해 온 끝에 지난달 전남 광양제철소에서 연산 25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생산라인 설립에 착수했다. 공사비만 총 6000억 원에 달하며, 오는 2026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포스코에 따르면 전기로 생산라인 구축으로 연간 약 350만 톤의 탄소 감축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포스코는 단순 전기로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기로에서 생성된 쇳물을 고로 쇳물과 혼합하는 '합탕' 방식으로 고품질의 철강 제품을 뽑아낸다는 구상이다. 

현대제철도 전기로와 고로를 동시 활용하는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확보된 전기로에서 생성된 쇳물을 고로 공정에 혼합 투입하는 방식으로 고급 철강재를 제조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럽의 거대 무역장벽을 뚫어낸다"는 것이 사측 설명이다. 

이 밖에 국내 철강업계는 전기로 증설에 이은 후속 저탄소 시나리오까지 골몰하고 있다. 신형 전기로인 'ESF' 개발로 직접환원철을 녹여 쇳물의 순도를 극대화하는 제조공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ESF의 경우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보편화되지 않은 신기술로, 포스코·현대제철 등 국내 유력 철강사들이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프로젝트다. 포스코의 경우 이미 단일용량 세계 최대 수준인 ESF를 운용하고 있다.

ESF가 전기화를 넘어 업계 숙원사업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베이스캠프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철강기업들이 넷제로 시대에 대비하는 궁극 사업이기도 하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원천기술인 '하이렉스'를 개발 중이며, 이는 수소를 활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한 철을 ESF로 용해시켜 쇳물을 추출하는 기술이다. 포스코의 하이렉스와 ESF는 상용화된다면 철강산업 전기화의 최종 버전이 될 전망이다.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업계의 '전기 모빌리티' 사업도 탄소제로의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 현대기아의 경우 이미 3년 전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개발을 완료했고, 이는 '아이오닉5' 등 주력 모델에 적용되고 있다. E-GMP 기반 전기차는 배터리 충전 시간당 주행거리에서 우월한 성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인 '애드먼즈'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E-GMP형 전기차 모델의 판매량은 지난해 기준 글로벌 4위(중국 제외)를 기록했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도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모빌리티 핵심 부품기업들은 저마다 해외 전진기지를 설립하고 괄목할 만한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국내 산업계의 전기화 첨병 역할을 도맡고 있다. 대표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지난해 해외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제외 점유율이 27.8%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건설기기업계도 전기화 물결에 몸을 싣고 있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1.7톤형 전기굴착기를 출시했고, HD현대건설기계 역시 올해 1.9톤 전기굴착기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두 회사는 오는 2026년까지 3.5톤급 모델까지 라인업을 늘리는 한편, 최종적으로는 14톤급 중대형 전기굴착기 개발에도 나선다는 구상이다.


◆ '전기화', 풍력·태양광 넘어 탄소제로 주역 거듭난다 


[사진=프리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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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업계의 이러한 전기화 노력은 단순 유럽 무역장벽 해소를 넘어 중장기 글로벌 동향을 감안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넷제로의 비중이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원에 쏠려있지만, 향후 25년 뒤면 전기화가 이를 대체할 것이란 국제 전망도 나온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에너지원별 넷제로 기여도는 전기화 27%, 풍력·태양광 12%로 흐름이 대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 보고서에서는 2030년 넷제로 비중이 풍력·태양광 33%, 전기화 14%로 나타났지만, 20년 만에 전기화가 탄소제로의 주역으로 거듭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는 대형 산업현장의 전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석탄·가스 등 기성연료 연소로 열원을 확보하는 방식에서 탄소배출이 없는 전기를 열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대대적인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효율 제고와 넷제로 달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게 글로벌 산업계의 새 비전이자 복안인 셈이다. 

넷제로의 선두주자인 유럽과 미국에서도 전기화를 주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기존 액화천연가스(LNG) 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전기화를 추진하는 '리파워(REPowerEU)' 정책을 방침화했고, 미국 역시 지난 2022년 '탈탄소화 로드맵'을 통해 전기화를 넷제로의 핵심 대안으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유럽과 미국에서는 철강, 석유화학 등 탄소 고배출 업종에 대한 전기화 프로젝트를 적극 가동 중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산업계의 전기화도 시급한 실정이다. 미국·유럽발 탄소국경세 장벽이 드높아진 가운데 석유화학이나 철강 외에도 탄소국경세 적용 품목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국내 산업계로선 탄소제로 최적화 대안으로 손꼽히는 전기화가 필수인 셈이다. 

정부 또한 탄소 배출 산업영역에 대한 전기화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철강, 시멘트 등 국내 산업계의 전기화 시나리오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해외 선진국에 비해서는 속도가 더딘 것도 사실"이라며 "현재 한국형 탄소중립 100대 기술 선정과 함께 정부가 전기화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구상 중에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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