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는 열심, 정치엔 무관심한 MZ세대의 오판

[편집자 주] 대한민국이 세계를 품고 있다. 우리 특유의 다이내믹하고 섬세한 표현을 담은 문화 콘텐츠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류' 열풍을 일으킨데 이어 음악, 푸드, 뷰티, 방산  등 전 분야에 걸쳐 'K'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OECD 국가 '자살률 1위' , 심각한 저출산과  사회·경제·정치의 양극화 현상 등 초일류 국가로 가기위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들도 엄존한다. '가능성을 여는 뉴스'를 지향하는 <뉴스캔>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한 '악습'들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같이 고민하는 연중기획 '대한민국 바로서기'를 연재한다.

 [일러스트=박기랑 기자]
 [일러스트=박기랑 기자]

[뉴스캔=박시현 기자] 4.10 총선을 보름 남짓 남겨둔 시점이지만 아직까진 제대로 된 선거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자원봉사자들의 우렁찬 인사를 제외한다면 특별히 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많지 않은 때문이다.

조만간 후보자들의 얼굴과 이력이 인쇄된 선거 포스터가 길거리에 등장하게 되면 제대로 된 분위기가 조성될 거라는 추측이 나오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게 이번 선거의 전부일 거라는 비관적인 예상을 내놓기 급급하다. 선거란 그저 거리를 지나치다 만날 수 있는 포스터 속의 사진 한 장이 전부라고 느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이른바 정치적 무관심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적 결합에서 파생되는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일차적인 요소다. 그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투표 참여 비중, 즉 투표율이다. 특히 이런 경향이 짙은 것이 바로 청년층이다. 물론 이런 경향이 최근 들어 갑작스레 생긴 일은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항상 청년층의 투표율은 장년층이나 노년층에 비해 현저히 낮았단 것이 그 증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1대 총선이던 지난 2020년의 투표율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당시 연령대별 투표율을 확인해보면 ▲20대 59% ▲30대 58% ▲40대 63% ▲50대 72% ▲60대 80% ▲70대 81% ▲80대 이상 56%였다. 2,30대 청년층의 투표율이 6,70년대 노년층의 투표율에 비해 20% 이상이 적었음에서 알 수 있듯 청년들이 투표에 참여하는데 지극히 소극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선거들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참여율에서 차이를 드러내긴 하지만 대선이나 지방선거 역시 청년층과 노년층의 괴리가 심각한 비율로 집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 역시 현재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함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해도 평균적으로 절반 이상의 청년들이 정치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다는 결과를 내어놓고 있는 것. 이유도 다양하다. 정치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유부터 정치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치가 없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에게 정치는 자신의 삶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전에도 그랬던 일을 굳이 지금 와서 호들갑을 떨며 우려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것이 우스꽝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우려하는 것은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장해물이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 경쟁국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정치 참여가 '숙제'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을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증거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선진국이 될 수록 투표율이 저하된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의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가장 최근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한국의 투표율은 66.2%를 기록해 전체 조사 대상 33개국 중 중하위권(20위)을 기록했다. 비교 기간을 민주화 이후 시기로 확장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화 이후 가장 최근 선거까지 한국 국회의원 선거의 평균 투표율은 61.54%, 기권율은 38.46%였다.

이 수치는 같은 기간 OECD 국가의 평균 투표율 72.69%보다 낮고, 기권율 27.31%보다 높은 수치다. 이 와중에도 선진국들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정비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단순히 투표율이 높고 낮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이는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 

나라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다. 투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나라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다. 투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정치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그에 따른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국민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라고 정의했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나눌지를 결정하는 행위란 뜻이다. 여기서 나눔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정치인이 되는 것이고 수혜자는 곧 국민이 된다.

이에 따르면 정치의 근간인 투표에 국민이 참여하지 않으면 국가가 국민의 필요를 파악하기 힘들게 되고 이는 곧 통치자가 국민의 의사를 모두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로 작용하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대상의 범위가 확대됨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투표하지 않는 국민의 수가 늘어날수록 국가는 결정권을 국민에 예속당하지 않고 임의로 해석해 적용할 위험이 커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리고 청년들이 투표소에 가야하는 이유다. 이런 기초적인 상식을 청년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투표 참여에 소극적인 이유는 현재 청년들이 놓인 상황과 성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때문이다. MZ세대로 대변되는 현재의 청년세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것이 ‘실리성’이다. 현실적인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명분과 이념에 경도되는 경향이 짙은 기성세대들과 달리 지금의 청년세대들은 자신과 주변인, 일상의 일들에 관심이 많은 성향을 띠고 있다. 단순히 출신지역이나 지지 정당에 대한 충성도로 투표를 하던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자신의 관심사에 따른 대응에 익숙해진 것이 그들이다.

이 말은 결국 자신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라 할 일자리, 부동산, 환경 등의 내용이 포함된 사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목소리를 높이고 그를 구현하기 위한 액션에 나선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현재의 정치가 이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결국 이로 인해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졌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청년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일 정책 부재가 청년들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 중대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탈정치화를 계속 좌시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되는 걸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기성세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누구보다 정치에 촉각을 세우고 이를 반전시킬 저력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의 대만총통선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 청년들처럼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만의 젊은 유권자들이 보여준 돌풍이 그것이다. 당시 선거에서 처음으로 선거권이 주어진 20∼23세의 젊은 유권자 129만명을 통칭하는 '서우투(首投)족'의 적극적인 투표권 활용은 결국 친중 성향인 제1여당 국민당의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이 아닌 반중친미 성향인 집권여당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를 총통으로 앉히기에 이르렀다. 타국의 이야기라 흘려들을 수 있지만 우리 청년들 역시 대만의 서우투족 못지않은 정치 민감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여러 조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 청년 한 사람의 '기권'... 사회 불평등 심화 기여할 수도 


그러나 그걸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청년들이 투표일을 그저 또 하나의 공휴일쯤으로만 여기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누구를 찍어도 마찬가지라서란 이유를 대기도 하고 기권도 의사표현의 한 방법이란 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너무도 당연하게 청년 유권자에게 투표를 통한 변화의 믿음을 심어주지 못한 정치권과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러나 정치가 먼저 바뀌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유권자가 먼저 행동에 나서는 게 때론 정치와 변화의 선순환을 가져오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를 선택하고 어느 정당에 표를 던질지는 유권자의 몫이다. 선택이 뭐가 됐건 투표는 해야 한다.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권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우리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누구보다 혐오하는 게 청년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들 느끼는 것처럼 2024년의 대한민국은 각종 지표에서 세계 일류 국가를 능가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동반되는 민주화의 정도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지난 2006년부터 발표하는 지수인 세계 민주주의 지수 결과가 일례다. 지난 2023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지수는 전년보다 두 계단 상승한 22위였다. 전 세계를 통틀어 22번째로 민주화된 국가라는 뜻이니 마냥 낙담할 필요는 없지만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일러스트=공유마당_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
 [일러스트=공유마당_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

총 5개 영역의 평가와 합산을 통해 산정되는 지수에서 우리는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항목에서 9.58점, 정부 기능 8.57점, 정치 참여 7.22점, 정치 문화 6.25점, 시민 자유 8.82점을 얻었다. 가장 나쁜 점수가 정치 문화였고 그 다음이 정치 참여였던 셈이다.

사실 우리 정치가 그 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아심이 들긴 하지만 그건 차후 문제다. 정치 참여 역시 그 못지않게 나쁜 점수를 받을 정도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이 청년층에 있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자료들로 증명할 수 있다.

결국 선진국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요소 못지않게 민주화가 구현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칭호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를 위한 가장 첫 걸음이 바로 투표다. 투표를 통해 확인된 국민의 목소리가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우리를 바꾸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4월 10일은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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